방치형 게임은 게임인가?
‘방치형 게임은 정말 게임일까?’ 이 질문은 여전히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저는 게임이 영화, 애니메이션, 소설 등 다른 문화 매체와 구별되는 가장 뚜렷한 차이점이 바로 ‘조작감’이라고 믿습니다. 손가락의 움직임에 따라 게임 속 캐릭터의 행동이 바뀌고, 그 조작감은 현실의 나와 게임 속 존재를 연결하는 유일한 링크로 기능합니다. 그래서 저는, ‘조작감이 없다면 그것은 게임이라 부를 수 없다’는 지론을 갖게 되었습니다.
조작감이란 무엇인가?
시뮬레이션 게임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선택지를 어떻게 고르느냐에 따라 다른 엔딩을 맞이하기도 하고, 혹은 고정된 반응을 얻는 게임들이 있죠. 미연시(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장르는 대표적입니다. 이 장르에서는 선택지를 고르는 행위 자체가 주요 조작 방식입니다. 그 외에는 텍스트를 읽으며 진행되죠. 하지만 중요한 건, 선택에 따라 분기가 갈리고, 그로 인해 플레이어는 ‘내가 이 세계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즉, 이 역시 넓은 의미의 조작감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리적 입력뿐만 아니라, 인지적 작용에서도 조작감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죠.
시뮬레이션 게임의 조작감:
‘본인의 선택을 통해 게임 속 세계와 상호작용하는 것’
방치형 게임은 어떤가?
제 지론에 따르면, 게임에는 반드시 조작감이 존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방치형 게임에는 어떤 조작감이 숨어 있을까요? 방치형 게임은 ‘보는 게임’에 가깝습니다. 캐릭터를 직접 움직일 수도, 적을 때릴 수도 없습니다. 플레이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양한 방식의 강화를 통해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것뿐입니다. 시뮬레이션 게임처럼, 여기서도 조작감을 ‘강화를 통해 게임 속 존재와 상호작용하는 행위’로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뮬레이션 게임과도 다른 지점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가장 큰 차이점은 ‘직접적인 조작이 없다’는 점입니다. 실제 플레이어가 하는 일은 조작이라기보단 후원에 가깝습니다. 캐릭터는 스스로 움직이고 전투를 수행합니다. 우리는 그 뒤에서 능력치를 올려주거나, 장비나 스킬을 부여해 주는 방식으로 지원할 뿐입니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그것을 관망합니다. 이것이 방치형 게임의 핵심 재미 구조이기도 하죠.
👀 내가 후원한 존재가 얼마나 멀리 갈 수 있을지를 지켜보는 감각
어찌 보면 인터넷 방송을 시청하며 스트리머에게 후원하는 경험과 유사합니다. 내가 돈을 쏘든 말든 스트리머는 자신의 루틴대로 움직이죠. 가끔 반응해 주면 고맙지만, 그건 필수가 아닙니다.
결론적으로
후원이라는 행위를 게임 속 사물에 영향을 주는 상호작용으로 인정한다면, 방치형 게임에도 분명 간접적인 조작감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만 그 감각은 전통적인 게임의 직접 조작감보다는 훨씬 느슨하고 지연된 형태입니다.
게임은 조작감이 있을 때 비로소 ‘게임’이다.
이 조작감은 물리적일 수도, 인지적일 수도 있다.방치형 게임은 조작의 주체가 시스템처럼 보이지만,
플레이어는 ‘강화’라는 간접적인 방식으로 게임 속 세계에 개입하고 있다.따라서, 방치형 게임 역시 조작감을 간직한 게임이다. 단지 그 방식이 다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