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TV에서 게임 BJ의 꿈을 품었던 대학생 시절, 기숙사에 있는 노트북의 사양이 좋지 않아 저사양 게임만 골라 방송을 진행해야만 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게임 언더테일. 오늘은 켠김에 엔딩까지, 약 11시간에 걸친 대장정의 시간을 회고하는 시간을 가져볼까 한다.

몬스터에게 자비를 베풀다
몬스터를 죽이고 레벨을 올린다. 이제는 너무나 당연한 게임계의 진리이다. 하지만 언더테일이라는 게임에서는 몬스터와 전투 외의 또 다른 선택지를 부여한다. 그것은 바로 '자비를 베풀다'이다. 어린 시절 슬라임을 잡다가 형님이 옆에서 "저 슬라임도 엄마가 있고 아빠가 있을 텐데... ㅠㅠ"라는 발언에 대쇼크. 슬라임이 불쌍해 한 동안 사냥을 금했고 형님에게도 사냥을 못하게 했던 웃픈 사건이 있었다.

예전에 그런 사건이 있었기 때문일까, 몬스터를 죽이지 않고 진행할 수 있다면 그것이 최적이라고 생각하여 언더테일은 만나는 모든 몬스터를 죽이지 않고 진행하는 것으로 결심했다. 몬스터들 측의 중책으로 보이는 인물들 부터 잡몹들 까지 모든 몬스터를 죽이지 않고 자비를 베푸는 것으로 일관했다.
다시 한번 세이브&로드
그렇게 한 5시간 정도의 시간을 들여 마지막 몬스터와 조우하게 된다. 그리고 그에게도 끝까지 자비를 베풀며 전투를 종료하면, 꽤나 감동적이면서 의미심장한 대사를 들을 수 있었다.
왜..? 왜 날 놓아준 거지?
너 스스로 착한 사람이 된다는 건 결국...
너 스스로 상처받는 일이란 걸 깨닫지 못하는 거야?
너 좀 봐봐. 좋은 친구들을 사귀었지.
하지만 이젠, 다시는 그들을 보지 못하게 됐잖아.
얼마나 많은 녀석들이 네게서 등을 돌렸는지는 말 안 해도 알겠지.
속상하지, 안 그래?
네가 아무도 신경쓰지 않으며 진행했더라면.
지금 기분이 나쁘지 않아도 됐을 텐데.
그래서 이해를 못 하겠다는 거야.
네가 옳은 일만 해왔다면...
왜 모든 게 이렇게 끝나버리는 거지?
왜?
삶이 이렇게 불공평한가?
...
야. 만약에 내가...
더 나은 엔딩을 보는 법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면?
넌 저장된 파일을 불러온 다음...
흠, 언제 한 번,
알피스
을(를) 보러 가는 게 어때?
더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었던 것 같은데 말이야.
혹시 모르지... 어쩌면 걔가 네 행복의 열쇠를 쥐고 있을지도?
나중에 보자고.
지금 껏 나를 향한 수많은 몬스터들의 공격에 단 한 번도 반격하지 않고 자비를 베풀며 그들과 친구로 지내려고 노력했다. 마지막 몬스터는 그런 나의 노력에 대한 치하와, 엔딩에 대한 허무에 대해 절규했다. 내가 그렇게 자비를 베풀며 손해만 보는 장사를 했으면 더 행복한 미래가 기다려야 하는 것이 지당하나, 이 게임은 여기가 엔딩이다. 그렇기에 내가 너에게 해피엔딩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겠다. 세이브&로드를 통하여.
진짜 해피엔딩을 보고 싶다면, 세이브와 로드를 통해 다시 시작하라
5시간 이면 이미 방송을 종료해도 좋을 시간이지만, 해피 엔딩을 참을 수 없었고, 동시에 마지막 몬스터의 세이브와 로드에 대해서 알고 있는 메타적일 발언을 통해 이 게임에 대해서 호기심이 마구마구 피어올랐다. 그렇게 2회 차를 바로 이어서 시작하고 해피엔딩을 맞이했습니다. 그렇게 다시 마지막 몬스터를 자비로써 이기면... 다음의 대사가 출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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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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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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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몬스터: |
모두가 엄청 행복해진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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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몬스터: |
괴물들은 지상으로 돌아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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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몬스터: |
평화와 번영이 세상 곳곳에 퍼져나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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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몬스터: |
숨 좀 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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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몬스터: |
더 걱정할 건 이제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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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몬스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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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몬스터: |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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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몬스터: |
아직 하나가 남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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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몬스터: |
마지막 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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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몬스터: |
모두가 노력해 만든 모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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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몬스터: |
지워버리는 힘을 가진 누군가가 남아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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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몬스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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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몬스터: |
내가 누굴 말하고 있는지 알겠지,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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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몬스터: |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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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몬스터: |
널 말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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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몬스터: |
네겐 아직 모든 걸 리셋시킬 수 있는 힘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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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몬스터: |
토리엘, 샌즈, 아스고어, 파피루스, 언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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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몬스터: |
네가 리셋을 선택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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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몬스터: |
모두가 이 시간선에서 뜯겨 나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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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몬스터: |
... 이 모든 일이 일어나지 않았던 과거로 돌아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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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몬스터: |
아무도 아무것도 기억 못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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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몬스터: |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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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몬스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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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몬스터: |
그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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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몬스터: |
나도 그 힘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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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몬스터: |
네가 막으려고 계속 싸워왔던 그 힘이잖아, 안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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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몬스터: |
내가 그렇게나 쓰고 싶었던 그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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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몬스터: |
근데 지금은, 모든 걸 리셋시킨다는 그 생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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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몬스터: |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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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몬스터: |
그런 생각은 절대로 다시 못 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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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몬스터: |
그 일 뒤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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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몬스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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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몬스터: |
그러니,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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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몬스터: |
그냥 놔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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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몬스터: |
프리스크가 행복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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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몬스터: |
프리스크가 자신의 삶을 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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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몬스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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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몬스터: |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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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몬스터: |
만약 네가 마음을 바꾸지 않을 거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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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몬스터: |
만약 모든 걸 지울 생각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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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몬스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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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몬스터: |
내 기억 역시도, 지워야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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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몬스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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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몬스터: |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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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몬스터: |
어쩌면 벌써 천 번도 넘게 들은 얘기겠네,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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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몬스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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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몬스터: |
뭐, 이게 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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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몬스터: |
나중에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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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몬스터는 분명히 나에게 말했다. 그냥 우리 주인공을 행복한 상태로 내버려 두라고, 자신의 삶을 살도록 내버려 두라고. 신처럼 군림할 수 있는 세이브와 로드의 힘을 더 사용하지 말라고 간청했다.
사실 전 자비를 베푸는 엔딩과 완전히 상반되는 모두를 죽이는 루트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습니다. 리셋하여 모두를 죽이면 어떤 플레이를 할 수 있을까 궁금했죠. 하지만, 결국 이 부탁을 받아들여 해당루트는 영원히 플레이하지 않기로 결심, 제 언더테일의 여정은 해당 회차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립니다.
이후로...
그 이후로, 나는 어떤 게임에서도 ‘리셋’ 버튼을 쉽게 누르지 못했다. 패배하더라도, 선택을 잘못했더라도, 그 순간의 결과를 받아들이며 끝을 보는 쪽을 택하게 되었다. 언더테일은 단순한 RPG가 아니었다. 그건 내가 ‘선택’이라는 행위를 얼마나 가볍게 여겨왔는가를 되돌아보게 한 게임이었다. 죽이거나, 살리거나. 리셋하거나, 받아들이거나. 그 사소한 버튼 하나에 내가 어떤 사람인지가 드러난다.
이제는 안다. 게임 속에서조차 ‘자비를 베푸는 일’은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라는 것을. 그건 세이브 파일의 힘보다 더 큰, 누군가의 이야기를 끝까지 존중하는 용기다. 그래서 언더테일의 마지막 대사처럼, 나는 오늘도 그들의 행복을 “그냥 놔 주기”로 했다.
리셋하지 않은 채, 그곳에서 멈춘 이야기가 오히려 나에겐 가장 완전한 엔딩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