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 성공 - 맹독 상태에 빠지다

개요

2022년 12월에 졸업식을 하고 지금껏 데이터분석을 향해 달려온 결과 지난주 월요일 드디어 데이터분석가 딱지를 달게 되었습니다. 이제 저도 그저 그런 데이터 분석가입니다. 그렇지만 마냥 기쁘지만도 못한 첫 출근부터 오늘까지 5일간의 출근을 하며 느낀 점을 간략하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개요를 읽으면서 느끼셨을까요. 이 글은 전혀 즐거운 마음으로 적고 있진 않습니다. 오히려 즐거운 노래를 들어야 겨우 우울감을 잊을 정도입니다.

취업 - 독이 든 성배

 

취업의 과정은 별 것 없었습니다. 몇몇 게임회사에는 심혈을 다한 서류를 구성하고, 알려지지 않은 인디 게임회사에도 혹시 데이터분석가가 필요하지 않냐는 셀프 세일을 하는가 하면서도 잡포털 사이트에 그냥 지원할 수 있으면 일단 지원버튼을 누르고 봤습니다. 그러던 중 몇몇 회사에서 저를 불러주었고 면접을 봤고 최종합격 연락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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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접에서는 몇 개월 간 만든 포트폴리오와 자소서는 안보시고 오직 이력서만으로 면접이 진행되었습니다. 자기소개에서 어필하고자 하는 프로젝트를 구두로 설명했고, 면접관분이 해당 프로젝트에서 의아한 부분들을 질문하는 구조로 진행됐습니다. 대부분의 질문은 포트폴리오에 답이 나와있었고, 심지어 구두로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설득력이 가는 구조로 담겨있었습니다. 더군다나 질문의 요지를 파악하지 못해 질문의 질문으로 답을 하는 상황이 연출됐고 그럴 때마다 서로에게 답답한 시간이 이어지는 면접이었습니다. 뭐 사실 그저 그런 중소기업의 '바쁜' 면접관을 연출하려던 것이었을까요. 확실하게는 인선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습니다.

 

「취업성공」 취업준비생에게 이 네 글자를 거부하라면 몇 명이나 거부할 수 있을까요. 그래요. 설령 게임에 얼마나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든, 게임 데이터분석가가 되어 플레이어분들을 진심으로 위한 패치를 진행하여 기쁘게 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든, 소중히 여겼던 가치들을 깡그리 무시할 정도로 취업이라는 단어에는 그런 마력이 있습니다. 그렇게 꿈을 접고 결국 최종합격 연락에 출근가능하다는 말을 해버렸습니다.

 

그래도 상관 없었습니다. 어차피 이직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그 사이에 다른 방면으로 게임에 더 파볼 수 있는 여지는 많았으니까요. 지난 글에서 알 수 있듯 굳이 게임이 아니더라도 남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기도 하는 편이니 열심히 일해보자라는 마음이 차올랐습니다. 첫 출근 전까지는 말이죠.

 

첫 출근 - 중독 상태

 

첫 출근에 '인사를 잘하자'가 가장 중점인 온보딩과 OJT를 받았고 먼지가 가득 쌓인 책상, 기름때 범벅에 먼지들, 먼지 쌓인 출입증들이 서로 간의 존재감을 어필하고 있는 키보드가 반겨주었습니다. 데이터분석 툴을 다운로드하고 파이썬 버전, 환경 변수와 같은 것들을 질문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몰라요."였습니다. 심지어, 같은 작업을 하는데 서로 전혀 다른 툴을 쓰고 있는 주임과 동료사원. 지금 제가 뭘 보고 있는 것인지 머리가 아찔해졌고 그 이상으로 아무런 작업 설명이 없는 것이 정말 힘들었습니다.

 

당연히 상세한 설명은 바라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사람을 뽑았다는 것은 인력이 충당될 필요가 있었기에 뽑은 것이고, 당연히 제가 할 일이 준비되어있다고 생각한 것은 과연 오만이었을까요? 첫 출근에 아무런 터치 없이 4시간 동안 화면을 바라보며 혼자서 데이터베이스를 뒤적이는 상황에 저는 다소 회의감을 느꼈습니다. 마치 거기 있지만 없는 신비로운 체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퇴근길에서 울컥거리던 저는 결국 퇴근 후 침대에서 슬픔을 주체할 수 없었고 눈물을 쏟아버리고 말았더랬죠. 무엇이 그렇게 슬펐는지 묻는다면 잘 모르겠습니다. 간절히 바라왔고 원해왔던 가치를 뒤로하고 당장의 이득에 눈이 먼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 그 노력을 하고 결국 들어간 회사에 대한 실망감. 필요로 하지 않다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허무감.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는 절망감.

 

취업은 생각 이상으로 허무했고 직장은 그 이상으로 무의미했으며 그런 환경에 저는 상상이상으로 저항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도 스스로에 대해서 한 가지 알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하며 넘기면 되는걸까요?

 

그렇게 원했던 취업에 성공했지만 독이든 성배를 마시면 독에 걸리는 것은 당연한 이치였습니다. 성배라는 컵이 아무리 멋있어 보여도 내용물은 독이었고, 그것을 마시면 맹독에 걸리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었죠. 어떻게 해독을 할 수 있을지 잘 안 보입니다.

 

 

해독제를 찾는 여정을 떠나다

 

어떻게 해독을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해독은 해야 합니다. 독이 온몸을 파고들어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순 없습니다. 울면서 결국 스스로의 미래에 대해 막막하지만 다시 계획을 세웠습니다. 던전을 깨서 나온 보물 상자에서 독이 든 성배를 좋다고 마셨지만, '맹독'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한 것이었죠. 포기하지 않고 다시 한번 보물을 찾는 여행길에 나서보려고 합니다. 오히려 전보다 더 상황은 안 좋지만 그럼에도 포기는 없습니다.